11월 2일의 역사속 오늘

2016. 11. 3. 13:52Issues & Media/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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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의 역사속 오늘 (오늘은 11월3일 입니다만 11월 2일자 부터 시작해 볼까 합니다.)

최근 최순실의 국정농단 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석 하기만 합니다. 역사속의 11월2일 오늘에는 어떤일이 있었는지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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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오늘의 역사

5공화국 시절의 비리를 밝히기 위한 국회청문회가 제13대 국회에서 의정사상 처음으로 열렸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개설한 5공비리특별위원회의 국회 청문회 활동이었습니다.


이때 5공화국의 성립과정과 통치기간중의 권력형비리를 집중적으로 추궁했었는데요. 이때도 기금모금의 강제성, 재단기금의 청와대 관리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었으니 현재나 지금이나 권력형 비리의 모습은 똑같나 봅니다.


이때는 일해재단설립의 비리를 밝히기 위한 국회청문회! 재단의 엄청난 재산규모는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었습니다.

이때는 제6공화국 (국민투표 직선제)의 시작점이었던 시기였으나 노태우 는 전두환과 함께 신군부의 12/12군사반란 을 주도한 주체였기에 5공화국의 부정부패 비리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요 청문회가 이루어질수 있는 계기는 야당의 의석수가 여당 의석수보다 많은 최초의 여소야대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여소야대 상황은 마치 현재의 "최순실씨-박근혜대통령"의 권력형 비리와 동일한 여건이라고 볼수 있겠네요

이미지ⓒ구글 검색 

광주민주화운동 특별조사위원회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이 청문회에서는 5.17 계엄 확대조치의 배경과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조작 여부에 관한 질문과 증언을 들었습니다. 또한 국회청문회에서는 1980년 언론인 해직과 언론사 통폐합 문제도 다뤄졌군요. 언론 청문회는 보안사 관계자와 언론사주, 해직기자 등의 증언을 들으며 5공화국의 언론통제정책을 집중 추궁했습니다. 이 당시 청문회가 열리기 전부터 백담사에서 칩거를 시작한 전두환은 증인출석을 계속 거부하다가 1988년 12월 31일 증인자격으로 드디어 청문회에 출석하게 됩니다.이때 전두환은 국회에 출석하여 질문에 대한 응답이 아닌, 증인선서도 없이 준비해온 발표문을 읽어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16년만에 국정감사와 함께 실시된 국회 청문회는  결국 전두환 대통령의 비리 사과와 백담사 은둔으로 이어졌습니다. (백담사가 유명 관광지로 인기를 끄는게 이 시점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때는 국회 청문회는 TV로 생방송돼 국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습니다.

청문회가 다소 형식에 그쳤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국회의 기능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었던 기념적인 역사입니다.

*당시 초선의원이였던 노무현의원이 청문회 스타로 국민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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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오늘의 역사

1950년대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인 TWENTY-ONE! 이란 퀴스쇼, 이 퀴즈쇼에 출연한 찰스 도런 교수가 프로그램 관계자들이 미리 정답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을 밝히게 됩니다. 이때 도런교수는 12만9천달러의 상금을 탈수 있었는데요. 도런 교수의 폭로는 당시 방송 제작자의 기만성을 보여줘 사회적인 큰 파문을 일으켰었습니다. 

이 사실을 주제로 한 1994년 작 영화 퀴즈쇼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씩 보셔도 좋겠네요

이미지ⓒ영화퀴즈쇼 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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